극동방송 인문학을 조국을 지키는 아들 딸을 위해 기도합니다. (영상 안주황)
극동방송 좋은아침입니다
20261001 극동방송 인문학을 하나님께 네 형제 이야기
극동방송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강남비전교회 한재욱 목사입니다.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 ‘인문학을 하나님께’ 오늘은 ‘나라를 위해 산화한 한 가정의 네 형제 이야기’를 하나님께 드리며 ‘조국을 지키는 아들 딸을 위해 기도합니다.’라는 주제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울산 남구 신정동에 이재양, 류분기 부부가 살았습니다. 여섯 아들을 둔 평범한 부모였습니다. 아침이면 아들들의 밥그릇을 채우고, 저녁이면 아들들의 발소리를 기다리던, 우리네와 똑같은 어버이였습니다.
1950년 여름, 6·25전쟁이 터지자, 이 집의 세 아들이 한날한시에 군복을 입었습니다. 스물여덟 살 장남 이민건, 스물다섯 살 차남 이태건, 스물두 살 셋째 이영건입니다. 어머니는 그날 세 아들의 등을 차례로 쓸어내리며 무슨 말을 했을까요. “몸조심 하거라”
그 말이 세 아들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이듬해인 1951년, 장남은 금화지구에서, 차남은 철원지구에서 잇따라 전사했습니다. 셋째 이영건 상병은 지금까지도 언제, 어디서 숨졌는지조차 알 수 없습니다.
전사통지서를 받아 든 사람은 아버지 이재양 씨였습니다. 한 장을 받고 무너진 가슴 위에 또 한 장이, 그리고 또 한 장이 날아들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슬픔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몇 해 뒤 화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섯째 이승건은 세 형의 순국으로, 현역 복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병역상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1964년 해병대에 입대했고, 청룡부대원으로 베트남 전선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1967년 여름, 꽝나이 지구 전투에서 총탄에 쓰러졌습니다. 한 가정의 네 형제가 두 번의 전쟁에서 모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막내의 전사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그날로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정부는 1971년, 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 류분기 여사에게 보국훈장 천수장을 수여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듬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어머니가 삼킨 눈물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남은 형제가 있었습니다. 넷째 이부건 씨입니다. 그는 형님들과 동생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1997년부터 자기 돈을 들여 홀로 추모제를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 작은 제단은 해를 거듭하며 공식 추모제가 되었고, 2007년에는 울주군 두동면에 네 형제를 기리는 충효정이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올해, 울산보훈지청은 이 네 형제를 ‘2026년 6월 이달의 우리 고장 보훈 인물’로 선정했습니다.
이들과 같은 고마운 사람들의 희생 위에 오늘 우리가 평화를 누립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휴전선 철책 앞에서, 거친 바다 위 함정에서, 하늘을 지키는 활주로에서 우리들의 소중한 아들과 딸이 깨어 조국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고맙습니다.
주님, 이 땅의 모든 장병을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품어 주시고, 그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건강하게 돌아오게 하옵소서.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15:13)
요한복음 15장 13절의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