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스크랜튼의 생애 1부│한국 근대 여성 교육의 어머니│한국에 온 최초의 외국인 여성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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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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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스크랜튼은 1885년 미국 감리교 여성해외선교회 (Woman‘s Foreign Missionary Society, WFMS)의 파송으로 의사인 아들 윌리엄 스크랜튼과 함께 한국에 왔다.

1886년 이화학당과 한국 최초의 여성병원인 보구녀관을 설립했고, 아들 윌리엄과 함께 동대문감리교회, 아현감리교회, 상동감리교회를 세웠다.

스크랜튼 부인은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으로서 이후로도 이화학당 업무와 여학생들의 교육, 또한 기독교 발전에 많은 노력을 다했고 1904년까지 교장으로 일했다. 이후로 1905년 내한한 룰루 프라이 당장에게 이화학당의 관리를 맡긴 후 교장에서 퇴임하였다. 이화학당의 성공 노하우를 발판삼아 보시동 수원읍 교회(현 종로감리교회)의 초가집에서 여학생 3명으로 삼일소학당[을 개교하였다. 이후 공옥여학교, 매일여학교를 세웠다. 이뿐만 아니라 진명여학교, 숙명여학교, 중앙여학교 등의 설립을 조력하였다. 말년에 미국으로 돌아가라고 권유를 받았지만, 그녀는 "조선 땅에서 죽겠다"는 신념이 확고해서 미국으로 가지 않고 평생을 지방을 순회하며 선교와 교육활동을 하였다. 1909년 10월 8일 한국에서 세상을 떠나, 한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묻혔다.